[소개] 영웅 소개 - [어둠] 라플라스
춤추는 눈꽃을 한없이 헤아리며 긴 밤을 지새던 어린 시절, 라플라스는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모두가 그를 아끼고 사랑했으니까요. 자칫 거만해질 수도 있었지만 이 미래의 어린 지도자는 꿋꿋이 자신의 길을 나아갔습니다.
그의 기나긴 인생에서 가장 아낀 제자를 고르라면 단연코 루실리카와 샬롯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제2 마탑주는 이따금 라플라스에게 부족한 결단력을 보완해주었고, 아카데미 최연소 교장은 마르지 않는 지성으로 그를 도왔습니다. 그러니 이 온정 가득한 엘더엘프에게 외로움이란, 이미 아득해져 버린 여름 한 철 더위 같은 거였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절망이 기어코 그를 찾아냈습니다. 국가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원로원의 흉계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냈거든요. 그의 세상을 빼앗으려는 이들을 어떻게 저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라플라스에게 엘펜하임은 그야말로 '전부'였으니까요.
그러나 이 최초 고발자는 그렇기에 최후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로원은 전란의 책임을 라플라스에게 물었거든요. 눈과 서리가 불길로 타들어 가는 광경 역시 필사적으로 싸워낸 그의 죄목이었고, 유서 깊은 엘펜 브릿지가 무너진 것 또한 그의 탓. 비명과 혼란 속에서 사람들을 지켜낸 엘더엘프는 원로원의 마수 아래 전란의 불씨로 탈바꿈해 있었죠. 실제로 그가 취한 행동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결과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엘펜하임을 지켜냈거든요. 하지만 가장 큰 상처는 이 책임을 앞장서 물은 자가 루실리카였다는 것입니다. 샬롯은 그를 위해 항변했지만 그 이상은 라플라스조차 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손을 잡은 이들 모두, 자신과 같은 결말을 맞으리란 걸 깨달았거든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루실리카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신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그건 사랑받은 기억조차 잊어버린 이가 어떻게든 극복해야겠지요.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한겨울 소복이 쌓인 눈에서도 포근한 겨울 냄새를 맡을 수 있듯이, 그의 외로운 계절에도 한 송이 눈꽃은 어김없이 피어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