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소개] - [물] 아란
가끔, 세월의 걸음은 한없이 빠르고 속절없이 느려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지요. 아란의 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빠르기만 했고, 그들과 헤어져 혼자 지낸 시간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느렸습니다. 그러니 그런 아란에게 새 '가족'이 되어준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하지만 아란은 그것을 굳이 티 내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적재적소에, 딱 적당한 만큼만. 아란은 모진 시련과 풍파를 겪으며 절제하는 방법을 배웠거든요. 어쩌면 넷 중 그 누구보다 빨리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을요.
그러나 그것이 아란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판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안에게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하고, 스승을 잃은 자신의 곁을 지켜준 율에게는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으니까요. 비록 한 동료가 '천자의 인형'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글쎄요. 그를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 동정과 멸시 외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니까요. 사신수의 뜻을 잇기로 한 이후로, 그들은 단 한 순간도 아란에게 소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조금은 무뚝뚝해도 그 안에 요동치는 물결을 가늠해주었으면 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다른 사람보다 인색하게 굴어도, 그 뒤에 숨은 온정을 보듬어주었으면 합니다. 아란은 죽었다 깨나도 당신에게는 절대 그것을 바라지 않겠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그런 이가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 전승자도 당신을 돌아보는 날이 오겠지요. 그날이 오면. 당신을 오롯이 마주하는 그날이 오면. 아란은 반드시 환하게 웃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