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야기를 해봅시다. 수십수백 번의 시간이 되돌아가기 이전의, 아주 오래전 이야기요. 대륙은 전쟁의 상흔을 회복해나가는 중이었고, 그 무렵의 갈루스는 내륙이라는 한계를 가지고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왕국이었죠. 모두 1왕자가 주도한 마도혁명 덕분이었습니다. 다소 심약하다지만 온유한 국왕과 앞날이 기대되는 후계자들. 완벽하지는 못해도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왕국의 미래는 밝아 보였습니다. 딱 하나, 손위 형제들과는 전혀 다른 명성을 떨치고 있던 막내 왕자님만 빼면요.

3왕자, 카르티스가 태어날 당시에는 전국이 떠들썩했죠. 이미 총명한 두 형제를 둘러싼 물밑 다툼이 팽팽했던 터라, 또 다른 선택지를 부여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국가 전체를 휘감았거든요. 그러나 이 남다른 왕자님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기대를 배반했습니다.

기품이나 의무는 나 몰라라 한 채 매일같이 거리를 쏘다니며 관광객에게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가 어디인지 안내하는 왕자라니. 상상이나 가십니까? 그는 늘 기상천외한 잔머리로 수업을 회피했고, 병사들의 눈을 피해 달아났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낄 것 없이 '망나니 왕자님'으로서의 명성을 덧칠해 나갔죠. 여느 때처럼 경비를 피해 달아나다, 공중에서 내려온 소녀와 부딪혀 추락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겠지요. 수많은 사건과 선택이 카르티스를 덮쳐왔습니다. 더 나은 선택도,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선택도 있었겠지요. 앞으로 그에게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지, 불과 한 명의 인간에게 주어진 유니버스란 힘이 어떤 방식으로 맥동할지. 이제 막 길을 걷기 시작한 카르티스로서는 알 수 없는 일뿐일 겁니다. 그러니 지켜보기로 합시다. 그가 걸어간 길을, 앞으로 걸어갈 길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