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무역으로 활발한 국가라 한들, 산골 마을의 풍경이란 엇비슷하기 마련이죠. 헬가의 고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익숙한 공터와 숲길, 마을 회관을 지나면 보이는 개울가. 길을 따라 쭉쭉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자그마한 여관에는 헬가와 두 부모님,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거든요.  헬가는 심심하면 빨랫대를 무기 삼아 휘두르던 활달한 아이였지만, 모험이나 책 속의 이야기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별조차 뜨지 않은 새카만 겨울밤, 그 어떤 등불보다 밝은 빛을 내던 두 눈과 마주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아무튼 용이란 개체는 특이합니다.  지성을 가지고, 장수하며, 세상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지요. 세간에서는 와전되어 진노한 용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둥, 해일과 지진은 모두 용의 분노라는 둥 낭설도 자자합니다만, 산골 마을 소녀의 귀에까지는 들어가지 않아 다행이었죠. 그도 그럴 게, 헬가가 내뱉은 첫 마디라고는 "으악!"도, "살려주세요!"도 아닌, "너 다쳤구나?" 였거든요.

그다음부터의 전개는 극명했죠. 용이란 생물은 그 무엇도 잊어버리지 않거든요. 생의 동반자로 택한 이의 첫 마디도, 이어진 행동들도. 함께 지새웠던 소중한 나날들까지. 그 모두를요.  그리고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헬가의 창에 깃들어, 계속되는 여정을 지켜볼 그날에도요.

◆ CV.남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