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샤드의 생애는 일정 부분까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으레 상상하듯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의 삶, 말 그대로의 행보를 보였거든요. 말주변은 없어도 능력만은 탁월했고, 갈루스의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쓰기 편한 도구가 없었죠. 자리를 내어줘도 정치나 외부 활동에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고,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곧잘 만들어 오는 기계. 가끔 오작동을 해서 이상한 걸 제안서랍시고 들이밀긴 했지만, 그 정도 리스크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마도공학부의 장관까지 지냈다고 해도, 실상 부서 내에서 라샤드는 소외된 인물이었습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해대는 데다 그의 생활습관이란 일반인과 조금 동떨어진 감이 있었거든요. 퇴근하기 바쁜 사람들 뒤로 며칠 씩이나 연구실에서 밤샘을 하는 건 예삿일이었죠. 그러니 그날 밤, 자동 소등 시간이 지나서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라샤드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연구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마지막 연구원이 말을 걸어볼까 말까 하는 고민 끝에 건물을 벗어난 다음, 라샤드는 조용히 일어나 중앙 제어실로 향했죠. 그리고는 그간 준비해왔던 대로 안전 제어 시스템을 마비시킨 뒤, 제국 심부의 모든 방벽과 출입구의 잠금을 해제했습니다.

결행의 날, 내부의 조력자는 약속을 지켰고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 제국과 맞섰습니다. 한 발의 총탄이 제국의 대미를 장식했을 때 연구소는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중이었죠. 지식의 보고, 그간의 연구 성과와 결실. 라샤드는 이 모두를 폭파하고서 홀연히 사라지기를 택한 겁니다. 그는 어떤 심정으로 불타는 연구소를 등지고 서 있었을까요? 수배지와 실종 전단이 번갈아 붙을 동안, 무엇을 다짐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