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드래곤이라고도 불리는 고룡. 그들은 세상의 방관자에 가깝지만, 후손이라 부를 만한 존재가 단 한번 역사의 전면에 드러난 적이 있습니다.
'고룡의 후예'라고도 불리는 시프리에드가 처음 인류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2차 마도대전 때였지요. 비를 내리듯 끝없이 이어지는 치유의 힘과, 어떤 위험이 있을지라도 아랑곳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은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런 그녀의 곁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모든 것이 마무리된 후, 그들은 마도대전의 열두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프리에드 본인에게는 영웅이라는 이름도, 위대한 혈통도 그다지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저 방관을 거부할 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웠고, 그 속에서 살아나가는 평범한 존재들이 소중했을 뿐이니까요.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고룡과 인간의 혼혈, 그러나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로서 오래도록 살아온 그녀에게는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이들과의 추억이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다행인 것은 시프리에드에게 앞으로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이고, 안타까운 점은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해줄 사람이 점점 줄어간다는 것이겠죠. 때때로 그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때가 자신의 여행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라고요. 그리고 오래도록, 깨어나지 않을 잠에 빠져드는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무한한 시간 속, 수많은 별빛 사이에서 그녀를 찾아내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이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당신의 여행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앞으로도 언제나 당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내 옆에 있어줄 수 있겠냐고 한번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콧방귀를 뀌면서 쏘아붙일지도 모르지만, 흔들리는 꼬리는 숨길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