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에게 인생은 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어렵지 않았거든요. 싫은 사람에게도 웃어주는 것, 할 수 있어도 못하는 척 놓아버리는 것. 조금만 웃어줘도 사람들은 친절했고, 놓아버린 일은 언제든 누군가가 대신 해주었답니다. 살아온 날보다 쓴 가면의 개수가 많은 샬롯에게, 인생은 너무도 쉬웠습니다.
얼마나 쉬웠냐고요? 엘펜하임에서의 일을 생각해 보죠. 샬롯은 아카데미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학위도 없었죠. 그럼에도 샬롯은 아카데미 역사 이래 최연소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마냥 라플라스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가 아니어도 샬롯에겐 누구든 그랬을 테니까요. 지성으로 반짝이는 눈빛, 뛰어난 실력의 정령술, 그리고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포용심까지. 라플라스는 샬롯의 그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비록 이 최연소 교수는 몇 달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녀의 가면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았죠.
이것뿐이냐고요? 에이, 이건 새 발의 피일 뿐이죠. 플로렌스에서는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레이스 양'의 이야기가 여전히 전설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콧대 높은 레디오스 가문에서까지 관심을 보인 '기품있는 아가씨'였으니까요. 그 아가씨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놀라운 일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이 아가씨의 다음 목격담은 사르디나에서 이어졌습니다. 새벽에 열리는 사르디나의 수산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그곳에 나타난 의문의 경매사는 번뜩이는 금전 감각을 지니고 있었죠. 그 유명한 열풍상단의 단주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이 재미있는 사건도 금방 진화되었습니다. 사르디나의 일이라면 칼리치아 호수의 돌 개수까지도 알아야 하는 누군가 덕분이죠.
자, 그럼 이제 다른 질문을 해야겠군요. 가면 속의 샬롯은 어떨까요?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울고 있을까요? 모두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는 이 아가씨에게 그 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샬롯은, 그저 살아갈 뿐이니까요. 이 아가씨의 삶은 애써서 쉽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도 어려워질 뿐이거든요.
그러니, 우리 약속 하나 해볼까요? 샬롯이 웃어준다면 기쁘게 인사해주세요. 슬퍼한다면 꼬옥 안아주시는 것도 좋겠군요. 이 미워할 수 없는 아가씨에게 지치지 않는 믿음을 주신다면, 언젠가는 가면 속의 표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 시간이 너무 길어져도 걱정 마세요. 가려진 얼굴 너머의 소녀는, 이미 당신에게 거짓 아닌 진심을 보여주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