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드는 오랜 기사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북방 대륙이라고는 하나 크고 작은 국가와 가문들은 어디에나 있고, 레흐티넨 가도 그중 하나였죠. 역대 가주들의 복무 기간을 합치면 삼백 년이 넘어간다지만 정작 후계자인 미리안드는 검술에도 단련에도 심드렁했습니다. 그는 걸음마를 배우기 전부터 마력의 흐름을 두 눈으로 보았고, 글자를 배우는 것보다 이르게 그 흐름을 두 손으로 잡아챌 수 있었거든요. 마법이라고는 문외한인 변경에서는 그 재능을 알아보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고작 네 살배기 도련님이 웬만한 장정도 들지 못하는 양손검을 척척 들어 올렸을 때는 아무리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무언가 다르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죠. 그날부터 가문에는 각국의 마법사들이 초청되었고 이 어린 천재는 경이로운 속도로 마법을 익혀냈습니다. 그저 편평하다고만 여겼던 황무지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샘을 발견했으니 그 기쁨을 어디다 비견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제약된 공간에서의 배움에는 한계가 있었고, 작별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례적으로 절차를 따라, 예의를 지켜 마지막 인사를 한 뒤 가문을 나섰죠.

이렇듯 종착점 없는 유랑이 시작된 이래 미리안드는 수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새로운 마법을 발견하기도, 혹은 꺼트리기도 하며 온갖 험지를 둘러보았죠. 선천적으로 세상만사에 무덤덤한 그에게 마법의 확장만이 새로운 기쁨이었으니, 종말의 징후에 반응해 움직인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의 계산에 열두 명이나 되는 동료들과 대거리를 하게 되는 일 같은 건 없었겠지만요.

빛의 검이 하늘을 가르고, 동료들이 저마다의 길로 흩어졌을 때. 미리안드는 아주 오래간만에 북방 대륙을 찾아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을 되짚어보았죠. 해묵은 권력과 규칙들이 무너진 풍경, 익숙한 저택이 학교로 사용되는 모습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리곤 예전처럼, 망설임이라곤 없이 다시금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오직 마도의 완성만을 바라보면서요. 뭐, 이 괴팍한 마법사는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가기로 정했으니, 죽지도 않고 돌아온 멍청이들의 부탁이라면 들어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과정이나 결과에 다정과 친절 같은 걸 기대해선 안 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