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같습니다. 언제나 그랬죠. 정신을 차리면 백색의 연구실과 실험실을 오가는 삶 말이에요.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고, 똑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것. 이런 환경에서 무언가 달라지기를 바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마음의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불행하게도, 조슈아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가 총독 자리를 꿰어찰 수 있었던 이유에 관해 여러 추측이 난무했지만, 사실 그의 거취에 그 자신의 의지가 포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조립된 삶, 예쁘게 포장된 표본으로서 무섭도록 깎아지르는 벼랑 위 일자로를 걷고 또 걷는 수밖에 없었죠.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않은 것에 가까울까요? 떨어지기엔 무서웠으니까, 보이는 길이라곤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런 말들로 자신을 속이고는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길은 무너졌습니다. 불변하리라 믿었던 진실이 예기치 못한 상황과 함께 산산조각 난 겁니다. 본래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마땅한 일이건만, 조슈아 역시 그렇게 받아들였을지는 알 수 없죠. 그런들 어쩌겠어요? 한번 무너진 길은 재건되지 않으니 더 나아가기 위해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질 수밖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앞선 풍파를 온몸으로 견디며 이 생을 살아내는 이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바람이 어떤 변화를 불어올지는 두고 볼 일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제부터 찾아올 세상에 잘 닦인 도로와 표지판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고민은 오로지 그의 몫이라는 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