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에서 자라난 소년은 친구를 사귀는 방법보다도 누군가에게 얕보이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배곯음은 모든 것을 앞서니, 그 순간에는 어떠한 고민이나 망설임도 사치일 뿐이었죠. 뺏고 빼앗기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소년은 자신의 몫을 지키기 위해 애썼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매일이 너무나도 길었죠. 그러니 수년간 단련된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한들 어떻게 뿌리칠 수 있었을까요? 소년은 마도사가 내민 손을 잡았고, 그렇게 제국으로 향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충분했습니다. 따뜻한 식사와 고정된 잠자리.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갈 곳 없던 분노와 상처는 훌륭한 원동력이 되었고, 재능은 꽃피었으며 이상은 의지를 북돋았습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을 위해 제국의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 겁니다.
이 모든 안배가 결국에는 무너지기 위함이라는 상상이 가당키나 했을까요? 아무리 번민하였든, 몇 번을 의심하였든, 제국이 그를 살린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일어날 일은 결국에 일어났고, 그의 이상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부정당했으며, 자신의 삶이 기만으로 점철되었다는 것마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의 행보는 이른바 존재 증명이라는 설명이 타당할 겁니다. 그는 필요와 입증을 갈망했습니다. 다소 감정적이었고,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마음도 없었죠. 어쩌면 그저 동질감을 느낀 이들에게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선택이었므로 남은 책임은 그의 몫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에 종지부를 맺고 난 다음에는,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선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