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두흐는 바지런한 왕위 계승자였습니다. 표는 못 내도 정이 많던 선왕이 급사한 뒤, 섭정에 선 양어머니로부터 후계자로서의 교본을 몸에 새겼죠. 바쁜 삶이었지만 단란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책임은 입고 두른 것들의 온당한 무게였고 마땅히 지켜야 할 대가였으니까요. 성인식과 계승식을 번갈아 치르며 젊은 왕으로서 통치를 시작했을 때도 걱정이라곤 없을 듯했습니다. 조금 바쁘다지만 저녁마다 직접 간식을 가져다주겠다는 동생이 있었고, 자상한 어머니는 때로 엄격한 조언가이자 마법사로서 좋은 스승이었으니 말입니다.

국가는 번영했고, 나날이 활발해졌습니다. 좋은 날들을 지새웠죠. 재앙이 닥치기 전까지는요.

시조로부터 전해진 왕국의 수호석이 두 쪽으로 갈라진 날, 브란두흐는 또 한 번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녀의 희생으로 틈이 생긴 옛 지배자를 제 몸 안에 가두어 봉인했죠. 사제 간의 본능 단위 연계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신기였습니다. 우주적인 존재를 집어삼킨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었고, 당연한 수순으로 왕조차 아니게 되었습니다. 몸에서 자꾸만 새는 탁기는 아무리 희석하고 걸러보아도 소용없을 만큼 방대했던지라 곧 번성했던 왕국은 황폐해졌죠. 마물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백성들은 검게 물든 숲으로부터 도망쳤습니다. 브란두흐는 마왕으로 불렸고, 이제는 그 누구도 현명했던 젊은 왕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브란두흐는 버텼습니다. 계속, 계속, 희망도 기약도 없는 시간을 언제까지고 버텼습니다. 스스로를 유폐한 왕국에서 정신이 온전할 때에는 책을 읽고, 때때로 이성을 좀먹는 옛 지배자들의 원념과 싸우며 발발했어야 할 '전쟁'을 홀로 끝내버린 대가를 치렀죠. 그러니 그에게 있어 정말 우연히 찾아온 시간의 틈새는, 멀리할 필요 없는 기사들과의 만남은. 분명 놀라움보다도 기쁜 일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