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하고, 오만하며,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자.
이 크롬을 아는 이라면 대체로 이렇게 평가할 겁니다.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겠군요. 당신이 아는 크롬 모두 이런 평가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무작정 그를 힐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가 왜 이터널 게이트를 넘어 또 다른 세상을 열려고 했는지 안다면 말이죠.
플로렌스 대부분의 귀족들이 왕가에 반기를 들었을 때, 오직 레디오스 가문만이 푸른 장미의 편에 섰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동으로 왕자를 모신 크롬에게는 다행인 일이었죠. 물론 한차례 피바람이 분 후에는 두 소년 모두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카를로스는 다정한 아버지를 잃었고, 크롬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의 장례식에 참가해야 했으니까요.
먼저 일어선 이는 크롬이었습니다. 말을 잃어버린 왕자를 끌어다 왕좌에 앉혔고, 이 적통의 푸른 장미를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켰습니다. 전국적인 반란으로 가족을 잃은 생존자 중 하나를 레디오스 가에 입적시킨 것 또한 그가 베푼 선의 중 하나였죠. 물론 이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전에 왕좌에 강제로 앉혀진 카를로스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레디오스 가의 양녀가 된 자이라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착한' 일을 했죠.
그러니 그가 새로운 세상으로 눈을 돌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을 겁니다. 왕위에 앉는 것은 싫지만 왕의 권력은 가지고 싶고, 딱히 가족을 이루고 싶진 않지만 가족의 소속감은 느끼고 싶었으니까요. 비단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그 신세계를 만들어줄 수 있다 속삭인 이만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일전의 평가를 거두지 않겠지요. 크롬은 분명 정쟁으로 피폐해진 플로렌스를 다시 일으켰고, 오직 정답만이 존재할 신세계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자비한 방식으로 많은 이들을 억압했고, 또 다소 섬뜩한 방식으로 게이트를 열어낸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크롬은 그깟 평가에 개의치 않습니다. 교만하고, 오만하며,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자면 또 어떤가요? 누군가에게는 용감하고, 현명하며,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친구인 걸요.
그러니 하나 묻겠습니다.
당신의 크롬은, 어떤 사람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