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상인이란 족속은 까다롭기가 임금님 못지않습니다. 상단주들은 이보다 더합니다. 어찌나 콧대나 높은지 밥 먹듯 강짜를 놓고 다 끝난 계약을 하루아침에 뒤엎기 일쑤죠. 그런 상인들을 다루는 데 도가 튼 거래 중개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즈라한입니다.
즈라한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부족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본능적으로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이해했고, 그 간극을 메우는 재주를 타고났지요. 사르디나의 국가 공인 무역 길드에서 그를 눈여겨본 것은 필연적 흐름이었습니다. 그가 시장을 쥐락펴락하다 못해 변덕스러운 해풍까지 예측할 즈음에는 상단주들이 줄을 서서 그를 기다렸죠.
진귀한 물건들이 더 이상 진귀하게 느껴지지 않을 무렵, 즈라한은 우연히 대해일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멸망한 왕국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깨달았지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이 그림자처럼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요.
거대한 비밀을 품은 무언가가 저 아래에서 즈라한에게 손짓했습니다. 인생을 모두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죠.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의 재주를 비싸게 사겠다는 이들은 많았습니다만, 사르디나의 통령도 열풍상단의 상단주도 즈라한을 묶어두지 못했습니다.
길드를 떠난 후에는 비밀스러운 의뢰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마수가 봉인된 유물, 잃어버린 기록, 고대의 잔해를 감정했습니다. 날카로운 눈은 세계의 이면을 읽어내렸고, 즈라한의 기준은 상인들 사이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즈라한에게 보증을 받고 싶다면 스스로의 가치를 똑똑하게 증명해내야 할 것입니다. 소문대로 그가 세속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데다 괴팍하다고 해도 겁먹을 필요는 없답니다. 당신이 진실되고 선량하다면, 즈라한은 돈이 아닌 신의로 값을 치를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