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3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많은 것들로 얼룩진 왕좌였죠. 선왕이 무리해서 시행했던 왕권 강화 정책은 그가 급사할 때까지 귀족들과의 갈등을 만들어냈고, 방파제를 잃은 왕자는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빌미로 섭정 노릇을 하려던 혈족들과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던 승냥이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낸 건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풍파를 거치며 지나치게 조숙해져버린 왕자는, 선왕이 세웠던 기틀을 단단히 하며 귀족들의 세력을 점차 약화시켜갔죠. 그리고 수많은 암투와 정치공학에 의거한 판단 끝에 하나뿐인 친구를 국가 무력의 정점으로 세우며 진정한 왕권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를 잃어버린 걸까요. 자그마한 균열을 눈치챌 새도 없이, 신뢰하는 친우의 조언을 귀담아들을 틈도 없이 어둠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도 익히 아는 대로 흘러갔죠. 차별과 편견에 매몰되어 침략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휘청이게 만든 폭군.

그의 정신에 간섭한 게 무엇이든, 그 선택과 결과들이 본연의 판단으로부터 비롯되었든 아니든, 변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카를 3세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지 않겠죠. 그의 곁에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하는 이들이 꽤 늘어났고, 그 모두를 신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판단력도 되찾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