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황자. 현무의 전승자. 신선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 비류에게는 수많은 칭호가 있지만, 본인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늘 내면, 그리고 자신의 완성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비류는 삶은 늘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현무의 전승자가 되어 모두가 우러러보기 전에, 그를 바라보던 눈들은 모두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첩으로부터 태어난 방계 황족, 하지만 하늘의 축복을 받아 똑똑하고 재능 넘치는 아이로 태어난 비류는 어린 시절부터 시기와 질투, 혹은 핍박과 천대의 눈길 아래 매일 보내야 했으며, 황궁의 공기가 매 순간 목을 옥죄어 오는 것을 견뎌야 했습니다.
매정하게도 시간은 계속 흐르기만 하였으며, 청소년기에 접어든 비류를 향한 이유 없는 비난과 견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유일한 아군이었던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다 지병을 얻어 몸져누웠고, 조금이나마 가깝게 지내던 형제들도 어느새 그의 곁을 떠난 지 오래였죠. 그러던 하루, 사신수의 전승자들이 모여 천자에게 인사를 올리는 전통적인 축제일이 다가왔습니다. 방계 황자라고 해도 어찌 되었건 황자였기에, 비류는 반강제로 형제들 사이에 서서 축제를 지켜보게 되었지요. 그날이 전환점이었습니다.
비류는 축제가 끝난 뒤 현무의 전승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당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전승자이기도 했으며, 제자도 수행자도 두지 않는 괴짜라고 알려졌었지요. 하지만 신선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불리며, 속세와 가장 거리가 먼 전승자이기도 했기에 더욱 비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안개의 미로를 뚫고 험난한 산길을 건너, 산속 깊이 숨어있던 현무의 사찰을 기어코 찾아간 열 다섯의 소년은 수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그의 문 앞에서 기다렸지요.
죽어있던 것과 마찬가지였던 지금까지의 삶을 벗어던지고,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