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요한의 놀이터에는 신나는 그네도, 재미있는 미끄럼틀도 없었습니다. 대신 냄비 투구와 젓가락 검을 들고 누빌 맛의 전장이 있었지요. 그의 노래는 보글보글 끓는 물의 멜로디가 되었고, 그의 춤은 도마 위에서 비로소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인생을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의 꿈은 쭉 '훌륭한 요리사'였습니다. 어쩌면 인생을 알려준 이의 무대가 주방이어서였을 지도 모르겠군요. 그의 삶에 방향키를 잡아준 마리 부인은 소금 하나로 다섯 가지 맛을 낼 수 있는 최고의 요리사였습니다. 그녀의 요리로 누군가는 환하게 웃고, 또 누군가는 병을 떨쳐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라는 말이 주는 기쁨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으니, 어쩌면 요리사의 꿈을 키우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을 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시간은 흘러, 그에게 다른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예기치 않은 기쁨은 언제나 낯선 얼굴을 하고 있기 마련이지요. 예. 오래도록 품었던 꿈의 주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도마 대신 방패를 들고, 식칼이 아닌 검을 쓰는 진짜 '전장' 말입니다. 요한은,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불 앞에서 흘리는 땀과 갑옷 안에서 흘리는 땀의 무게가 다를까요? 당근을 써는 칼보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검이 더 날카로울까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요한은 알게 되었습니다. 길의 시작은 다를 수 있어도 그 과정과 끝은 결국 같다 말이지요. 그게 주방이든 전장이든, 자신의 능력을 재료 삼아 타인을 돕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자, 이제 나아갈 시간입니다. 훌륭한 요리를 만들진 못해도, 든든한 동료와 함께할 수는 있겠지요. '잘 먹었습니다.' 라는 말은 듣지 못 해도, '덕분에 살았다.'는 말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요한은 새 전장에서도 여전히 씩씩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