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족은 문명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종족으로, 이전에는 민가를 습격하여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라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뭐, 정도 이상으로 난폭하다거나 사회화가 불가능한 이들이 존재하긴 했으니, 마냥 오해인 것은 아니었죠. 지금에야 강대한 힘을 지닌 부족으로서 많은 국가들과 교류하고 있다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냐 묻는다면 또 고개를 젓게 될 겁니다.

대부분 용병 생활을 하며 부족 단위로 유랑하는 이들의 특성상, 아란이 이번 대의 전승자가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부족 내에서는 물론 미르를 포함한 각국에서도 반응은 떠들썩했습니다. 하지만, 아란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고, 선대 주작의 전승자인 스승님 또한 성심을 다해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이런 둘의 유대에 누군가의 출신 성분이나 고향, 종족이 다 무슨 상관이었을까요? 그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인연이 있었는데 말이죠.

시간이 흘러 아란이 정식으로 주작의 전승자가 된 다음, 스승님은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 실종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요. 누군가는 이를 일컬어 귀인족을 후대로 삼은 업보라 손가락질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귀인족의 의를 저버린 채 천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 죄라 떠들고는 했죠.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란은 나아가길 멈추지 않을 겁니다. 신의를 다하기 위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그저 걸어갈 것입니다. 언젠가 찾아올 재회를 이정표로 삼으며, 아주 오랜 삶을 향해 묵묵히, 또 착실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