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평생토록 따라다녔던 그 이름의 무게가 비앙카에게 있어 어떤 중압이었을지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기대어 늘어져도, 서둘러 달려가도 이상하리만치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았거든요. 무언가를 해낸다면 그 자신의 이름으로 칭찬받는 당연한 일이 비앙카에게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죠. 요구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사람들의 눈은 매서워졌습니다. 복에 겨운 소리라며 손가락질하는 무리에게 마땅히 되돌려줄 말도 없었죠. 그래서 비앙카는 언제나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력에는 반드시 합당한 결실이 따른다고 믿으면서,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삶의 의미를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되뇌면서요.
계기는 마땅히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삶을 뒤바꿀 만한 운명의 상대가 나타난 것도 아니거니와, 그날은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었죠. 석양이 지는 시간, 갑판 위에 있던 비앙카는 수평선 너머를 가물거리던 돌고래 떼와 우연찮게 마주쳤거든요. 사르디나의 뱃사람들에게 행운의 상징인 그들이 헤엄치는 걸 본 순간, 내면의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는 우스울 만큼 일사천리였죠. 기어올라가려고 발을 구를 때는 그토록 높아 보였던 탑이 내려올 때는 한순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허망하지는 않았죠. 호흡법을 잊어버린 폐에 공기가 가득 들어차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나요? 비앙카에게는 그날이 딱 그랬거든요.
누군가는 포기라고, 누군가는 용기라고 말할 테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비앙카는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거든요. 아무렴 남들의 시선보다야 오늘의 할 일, 크로핀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 단조롭고 부드러운 일상, 시끌벅적해도 귀여운 부하들과 미래의 통나무로 지은 별장의 구상도가 더 중요하다 여겼죠. 물론 삶은 짧고도 기니, 충분한 휴식 뒤 다시금 찾아든 열정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두고 볼 일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