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곡점. 유니버스 열 번째 단말의 정지 후 열한 번째 단말이 깨어났습니다. 지극히 통상적인 절차였죠. 관리는 계속되어야 하고, 단말에게 의무 수행은 필요가 아니라 절대적 섭리였거든요. 람다는 깨어난즉슨 이전 세대의 리소스를 흡수하여 빠르게 낯선 세상에 익숙해져갔고, 이 세상을 구성하는 제각기 개체들에 대해서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람다에게 있어서는 제법 오랜 시간이었지만, 글쎄요. 흐름이란 상대적인 법이므로 우리의 시선에서는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새였겠지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세상을 채운 리소스는 다시금 방대해져 갔고, 이전 세대 영웅들의 여파로 올바르게 작동되었어야 할 재앙은 씨앗 단계에 머물러 있었죠. 세상의 관리자는 깨달았습니다. 아직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세상에 다시금 재앙이 닥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작동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혹은 비로소 오랜 세대에 걸쳐 학습된 진정한 '단말의 의지'가 발현된 걸까요? 단말, 람다는 이제까지의 단말들이 의심하지 않았던 가장 근원적인 단계에 균열을 가하게 됩니다. 인류 존속 프로그램. 통칭 '재앙'의 실효성에 대해서 말이지요.

개인도 국가도 아닌, 섭리에 반발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능력을 초월한 사태였습니다. 람다는 신중하게 행동했지만, 리소스 가용 자격 정지를 피할 수는 없었지요. 기능 정지와 회수, 그리고 권한의 양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선택지 중 람다는 필사적으로 뜻을 굽히지 않을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수만 번의 연산을 거쳐 새로운 백도어를 구축해냈죠. 이른바 계약자 시스템의 재정비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람다는 적임자를 찾아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