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모두가 알듯이, 단 한 그루의 작은 사과나무였습니다. 이제 막 성년에 접어든 용은 대륙을 둘러싼 패권 다툼에 흥미가 없었고, 그저 인세를 탐구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의 집념 어린 탐구욕은 훌륭한 뒷받침이 되어주었죠. 언덕 위 나무 근처에 지어진 학술의 공간에 각종 서적들을 보관하고, 여러 학자들을 초청하고, 친밀한 요정과 담소를 나누면서 나날이 그 규모가 커져갔습니다. 작은 광장은 어느새 축제의 거점이 되었고 우후죽순 마을들이 생겨났죠.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터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건축가와 용의 석재 운반 능력, 그리고 장난기 많은 요정의 약간의 도움을 통해 지금도 그 위용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성채로 변모했고요. 그렇게 그곳이 더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을 만한 규모가 되었을 때, 용은 기꺼이 아발론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즐거운 나날이었을 겁니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모든 것이 순조로웠거든요. 행복에 젖은 웃음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 집집 너머 은근히 들려오는 종이의 팔랑거림은 용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이 되었죠.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듯이, 용의 초월적인 수명으로 인세를 사랑해버린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토록 끔찍한 광경이 다시 있을까요? 하늘의 틈으로 검은 비가 쏟아져내렸습니다. 가장 뛰어난 전사들은 모조리 패퇴하였고, 상처 입는 것은 언제나 약자부터였죠. 용은 아발론을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지 끝까지 망설였으나, 결국에는 성검을 들고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대륙을 구하는 것이 곧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다음부터는 익히 아는 대로입니다. 구전된 이야기 속 신화는 이제 항간의 소문으로밖에 향유되지 않고, 왕은 성군과 폭군을 가리지 않고 바뀌었으며 작은 국가는 그 이름보다도 변방의 소국이라는 명성으로 알려졌죠. 그렇게 세상이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러 당신에게 닿은 겁니다. 이 사실이 때로는 막막하겠지만, 걱정은 마세요. 그는 당신이 이름 붙인 형태로 그곳에 존재할 테니까요. 언제까지고, 아발론을 수호하는 한 사람의 행정관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