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한치의 이지러짐도 없는 둥근 달만큼 그저 평안히 살길 바라는 이름이지요. 양친의 소망대로 살 수 있었다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운명은 누구도 바라지 않던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고운 쌀 한 톨 찾기 어려운 퍼석한 밥. 동장군을 피하지 못해 추위로 곱은 손을 후후 불어야만 했던 가족. 느지막이 찾아온 기쁨이었지만 세상을 견디기는 어려웠던 병약한 누이. 이 모든 것이 어린 온달을 너무도 빨리 성장시켰습니다.

버거웠을 것이란 추측은 장차 대장군이 될 사나이에게 모욕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그는 무엇이든 해냈습니다. 어떤 위기든 헤쳐나갔고, 어떤 적이든 망설임 없이 벴습니다. 어렸지만 그만큼 악착같은 맹호의 기세를 당해낼 이는 아무도 없었지요.

한낱 병사에 불과했던 온달은 마침내 가우리 역사상 가장 어린 장수, 하지만 가장 뛰어난 대장군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서임식 날 고개를 들어 주군을 마주하자마자, 그는 깨달았습니다. 제 앞에 선 어린 왕이 사실 어렸을 적 산에서 구해준 길 잃은 아이였다는 걸요.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확신했죠.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서로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시간은 흘러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온달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가족은 전쟁과 기근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린 나이에 즉위한 공주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이웃 나라의 침략을 대비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두렵진 않았습니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온달의 짧은 인생에서 최후의 전투로 기록된 그날, 그는 한 가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망설임 없이 도망친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겁니다. 주군의 생사가 어찌 되든 외면할 수 있다면요. 그러나 기꺼이 제 숨을 내놓기로 결심했다면, 적어도 주군은 지킬 수 있을 겁니다. 기꺼이 불구덩이로 뛰어든 온달은 안도했습니다. 무사히 피신하는 주군의 뒷모습만큼 그를 안심시킬 것은 없었거든요. 어쩌면 그 신의가 그를 또 다른 세상의 주군에게로 데려다 준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곳은 불바다가 된 전장이 아니라, 머나먼 시간과 알 수 없는 나라, 아발론이었으니까요.

많은 것이 변했지만 조금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온달. 폭풍우가 몰아치든, 매서운 추위가 살갗을 찌르든, 한치의 이지러짐 없는 이 둥근 달은 오늘도 그 자리에 묵묵히 떠있을 겁니다. 그저, 당신이 온마음 다해 믿어주기만 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