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가는 아기 울음소리가 매우 드문 가문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자칫 오만한 아이로 자랄 법도 했겠죠. 그러나 꽃을 사랑하는 이 작은 아이는 모두를 돌아볼 줄 아는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장차 델포이아를 이끌어야 할 아들이 그런 성정을 가졌으니, 당연히 욕심 많은 아버지의 성에는 차지 않았겠지만요. 발터 역시 평생을 노력해도 그의 바람을 이루어줄 수는 없었을 테고요.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친구들이 그에게도, 베른하르트 가에도, 나아가 델포이아에도 큰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발터를 격변하는 세상의 중심으로 이끌었죠.
누군가는 그에게 또래와 나누는 우정을 알려 주었고, 또 누군가는 그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형제애를 새겨 주었습니다. 물론 이 중 가장 큰 행운은 딱 한 가지일 겁니다. 피가 섞인 가족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 발터는 그들의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 역시 그를 사랑할 준비를 마쳤던 겁니다.
여정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당신 역시 잘 아실 겁니다. 그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은 마지막 전투. 그곳에서 발터가 얻은 것은 앞으로 나아갈 용기였고, 잃은 것은 그 길을 함께 갈 친구였습니다. 세상의 끝에 두고 온 추억은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열어볼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만난 세상은 발터가 그리던 그대로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 순간에 바란 건 필시 이런 모습이었겠지요.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아서, 언제고 살아서 힘차게 걸어가는 것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한 발터가, 우리에게 안겨주고 싶었던 내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