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격변합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시대에 따라 각자의 역할은 변해가지요. 난세에는 영웅이 출현하고 사람들은 힘을 모아 궐기합니다. 그런 희망의 불꽃에는 꺼트리려는 움직임이 뒤따르겠죠. 흐름이란 이처럼 비슷한 모습을 띠는 법이지만, 여기. 그런 세상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고요히 흐르는 잔물결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였다가 노파가 되기도 했고, 악마의 모습을 한 괴담에서부터 끔찍한 괴물 이야기로 변해 사람들 사이를 쏘다니고는 했죠. 진실과 거짓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이 실존한다는 사실이겠죠.
따라서 또 다른 가정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다시금 계약자가 출범한 날, 스칼렌은 맹렬히 타오르는 빛을 두 눈에 새기고 말았거든요. 그저 떠돌던 밤구름을 잡아 내릴 닻이 생겨났으니, 더 거리낄 게 있을까요? 스칼렌은 기꺼이 지면에 내려오기로 정했고, 나풀나풀 유영하던 형체를 본래의 것으로 고정하기로 마음먹었죠.
이유? 이유가 필요할까요? 스칼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는 언제나 딱 하나뿐이었는데요.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할 것, 펼쳐낸 자신의 마음에 화답할 것.
그러니 스칼렌은 오늘도 유유히 흘러갑니다. 흔들림 없이, 동요 한 점 없이. 세상의 마땅한 방향성과 적법한 의무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와 용기 같은 미명에 눈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을 길잡이 삼아 따르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