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때의 라우젤릭에 관해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그 재빠르고 날쌘 아이 말이군!' 비르야 가문의 맏이였던 라우젤릭은 언제나 빠르게 움직이는 법을 알았고,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능숙하게도 모두를 챙겼습니다. 그러니 아름다운 붉은 땅이 화마로 뒤덮이던 날,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이가 라우젤릭이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죠. 가장 절망적인 건, 그게 딱 한 번뿐인 불행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불길, 또 불길. 라우젤릭은 어느새 불이라면 학을 떼게 되었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란 속에서 질서와 정의를 잊어버린 듯 구는 모든 이들이 원망스러웠죠. 자신하던 두 다리는 점차 무거워져만 갔고, 무엇이 옳은 일인지 분명히 짚어 내던 판단력도 흐려졌죠. 그렇게, 꺼져 들어갔습니다.
그런 줄로만 알았죠.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던 거대한 숲까지 불씨가 옮겨붙은 날. 그 불길의 정면으로 달려가 맞서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에요.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자랑하던 두 다리로 해낸 일이 도망뿐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지도 모르죠.
의도가 중요할까요? 결과적으로 라우젤릭은 깊은 숲의 숨을 틔워 올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초목의 씨앗을 다시 이 세상으로 돌려두었죠. 그렇게 만난 인연과는 징하게도 안 맞는 구석뿐이었지만, 둘은 결코 갈라서지 않고 세상을 누볐습니다. 무려 지금까지도요. 이 여행의 결말은 아직 쓰이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라우젤릭은 내내 흘러갈 겁니다. 명징한 질서가 이끄는 대로, 자신만의 물결을 따라. 진정 옳다고 생각하는 질서와 자유를 찾아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