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리 성좌는 시련을 관장합니다. 압도적인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성좌의 지고한 의무이죠. 아, 누군가에게는 검은 산양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군요.

검은 산양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본신을 나누어 여러 화신체를 창조했습니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반신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지요. 그러나 세상 일에는 늘 예외가 있는 법입니다. 파괴뿐인 의무에 회의를 품은 돌연변이가 출현했거든요.

아리에스를 뒤흔든 것은 고독도 연민도 아닌, 죽음보다도 고통스러운 권태였습니다. 다른 화신체를 찾아 대화를 시도했지만 냉담한 침묵만이 돌아왔죠. 답을 찾지 못한 아리에스는 어둠 속에 침잠한 채로 수천 년의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권태의 사슬을 끊어줄 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면서요.

옅게 태동하는 수호자의 힘은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가장 밝은 빛'이라면 제 목숨을 끊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요. 하지만 인류의 수호자는 아리에스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성좌의 의무는 오래도록 방기되었고 적의도 감지되지 않았으니까요. 존재 목적을 상실한 반신은 갈피를 잃고 말았습니다.

수호자는 목적 없이 태어나 운명을 창조해나가는 인간들의 삶에서 단서를 얻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돌며 다양한 이들을 만났습니다. 가까이서 본 인간들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습니다. 욕망에 솔직한 부류가 보물을 빼앗으려 드는가 하면, 가진 것 없는 이들이 그늘을 내어주기도 했죠.

신비 상인이라는 별칭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아리에스는 전쟁의 불길과 기근으로 황폐해진 땅 사이를 오가며 병들고 굶주린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호의로 부풀려졌다가 악의로 과장되기도 했습니다만, 그는 무엇도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소문을 키워나갔습니다.

화신의 변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장사꾼 노릇에 싫증이 나면 본성을 따라 전장으로 돌아갈 테지요. 그리고 그때 그가 어느 편에 설지는, 이제 당신에게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