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요함과 쓸쓸함을 떠올릴 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공포와 두려움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브란두흐에게도 밤은 하나의 의미로만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해 홀로 고독을 씹어야 했던 때이기도 하고, 또 시간의 흐름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보내야만 했던 시간이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하나의 분기점은 존재합니다. 옛 지배자의 힘을 삼켜 1차 마도대전을 홀로 종식시킨 것은 같으나, 다른 브란두흐와 달리 그저 안으로 갇히지만은 않았으니까요. 위아래도 구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한없이 헤매고, 또 헤매고. 방황의 끝에서 마침내 브란두흐는 자신을 구하러 온 고룡의 후예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그녀는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또 플로렌스 굴지의 귀족 한 명이 뒤에서 몰래 도와준 일도 잊어서는 안 되지요. 크롬이 아니었다면 플로렌스 내 한 영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포도주를 정성스레 빚으며 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다시 이을 수 있게 된 삶이니 어떤 식으로 불리든 아무렇지 않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플로렌스에 나타난 의문의 귀족이라는 둥, 마음대로 악몽을 선사해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둥, 피를 마시고 살아야 하는 흡혈귀라는 둥. 물론 어떤 것은 맞고 또 어떤 것은 틀립니다. 그러나 브란두흐는 그 소문들에 답하지 않을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간단합니다. 붉은 밤, 핏빛의 와인, 그리고 모두를 홀리는 춤사위. 이것만큼 그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브란두흐를 이루는 이름은 많지만 어쩌면 당신은 평생 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의 본질이겠지요. 당신이 그를 별로 봐준다면 별이 되어줄 것이고, 마왕으로 여긴다면 기꺼이 마왕이 되어줄 테니까요.

자, 춤을 출 시간입니다.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건넨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죽음의 춤에 응한 것이긴 합니다만 뭐, 그것도 새로운 경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분명, 즐겁고 또 황홀한 기억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