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ㅡ그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시간으로부터 전승된 이야기든, 그곳이 사람 사는 땅이라면 대부분 통용되는 법칙이기도 하지요. 그걸 이곳에 적용해 본다면 한 가지 흐름을 눈치챌 수 있을 테고요.
흐름. 정해진 흐름. 아힐람은 말하자면 그 흐름의 선두 주자였습니다. 인류의 대소사마다 빛살처럼 내리꽂혀 해결해 주는 의지의 화신이라니, 얼마나 편리하고 듣기 좋은 신화입니까? 심지어 그 영향력이 기록되거나, 규격화되지 않기 위해 할 일을 마치면 원형으로 돌아갔지요. 의지란 본디 물성을 띠지 않으니 눈에 남는 게 없음은 당연하고요. 동료들의 의견은 차치하고서, 아마 본인에게는 이별에 대한 슬픔이나 소멸에 대한 공포 따위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웬걸,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니까요.
그러나 세상의 작은 반항인지, 혹은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건지, 혹은 그보다 더 큰 안배가 남아 있는지는 몰라도 아힐람은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산산이 부서져 황금 빛가루로 날리지 않고 그저 고요히 잠든 인간처럼 그 자리에 남았죠.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은 한 마법사의 발견으로 무마되었고, 하필이면 그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실력자였던 탓에, 이 세대의 인류는 기어이 이전 세대의 화신을 다시금 맞이하게 됩니다. 다만 그 주체가 된 마법사는 아힐람을 신성시하는 대신, 제 이름자와 같은 성을 주고 함께 떠돌기를 택했죠.
누군가에게는 짧고,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이 지난 뒤 아힐람은 다시금 선택의 분기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사명이라는 허울에 사로잡히지 말고 있는 힘껏 달려 벗어나라고요. 또 혹자는 말합니다. 사람이란 태어난 순간부터 그 무엇도 오롯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그렇다면 착각일지언정 마음 가는 길을 택하라고요. 아힐람은 가족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는 수호자였고, 결국 또 한 번 인류를 지켜낸 선봉장으로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산산이 부서지는 과정까지 재현되었으니, 어쩌면 후대의 인류는 소멸하지 않았던 처음부터 예비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런들 무슨 상관일까요?
아힐람은 여전히 당신들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를 보호하며, 인류를 위해 살고 죽을 겁니다. 그리고 재회의 날, 당신을 향해 새로 익힌 미소를 선보이겠지요.

